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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트 세습(대니얼 마코비츠)

by JJoono 2021. 6.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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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니얼 마코비츠 '엘리트 세습' : 능력에 의해 사회적 지위가 결정되는 능력주의의 진화에 대한 고찰. 현재의 능력주의 기반 시스템을 비판하며 엘리트와 중산층 간의 격차에 특히 주목한다. 엘리트의 무모한 자기착취와 중산층에 대한 경멸을 강조하며 능력주의 기반의 사회에 대한 장기적 지속 가능성에 의문을 제기한다. 이에, 명문 교육 개선과 직업 시장 재구성과 같은 대안을 제시하며, 능력주의의 핵심 논리에 도전하고, 더 포용적이며 균형 잡힌 사회 구조의 필요성을 시사한다."

 

Meritocracy, 능력주의는 출신이나 가문 등이 아닌 능력이나 실적, 즉 메리트(merit)에 따라서 지위나 보수가 결정되는 사회체제를 일컫는다.

 

능력주의가 오늘날처럼 자리잡기 전에는 출신 성분에 따라 권력이 분배되었다. 귀족 가문에서는 가문의 이름만으로도 출세의 길이 열려있었으며, 이를 유지하기 위해 노동이 강요되지 않았고, 여가 시간을 가진다는 것은 귀족들의 전유물로만 여겨졌다. 도덕적으로 타당한지 여부를 떠나서 세상의 빛을 보는 순간 천부적인 권력을 손에 넣은 셈이었다.

 

요즘은 어떨까. 귀족이라는 단어는 사전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단어가 되었으며, 그 빈자리는 엘리트라는 단어가 대체하게 되었다. 엘리트는 이전 시대의 귀족과는 다르게 강도 높은 노동에 시달리며, 여가 시간을 가지지 못해 일과 삶의 균형이 무너져있지만, 월등한 생산성과 노동 시간을 통해 중산층과는 급이 다른 지대를 생산한다. 또한 출신 성분을 가리지 않고 누구나 노력만 한다면 성취할 수 있다는 사고 방식을 제시하여 도덕정 정당성이라는 마지막 퍼즐 조각까지 손에 넣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완벽하고, 그렇기때문에 오늘날 대부분의 사회가 능력주의를 기반으로 돌아가고 있는 듯한데, 저자는 어떤 점을 지적하고 경고하고 싶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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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중반 세인트클레어쇼어스의 사례처럼 제조업에 종사하는 중산층이 경제 활동의 중심이 되는 사회에서는 경제적 불평등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지 않았다. 기초 교육만 받더라도 직장을 구하고 가정을 꾸리는 데에 문제가 없었으며, 자가와 자차가 있는 균형잡힌 삶을 영위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이 중산층은 찾아볼 수 없고, 단순 생산등의 일에 종사하는 노동자와 금융, 경영 컨설팅, 의료계 등에 종사하는 엘리트로 양극화되는 추세이다. 엘리트는 끊임없는 자기 착취의 늪에 빠져 평균적으로 주 80시간의 노동을 하고, 그에 맞는 보수를 지급받는다. 이들의 자기 착취에 대한 보상은 높은 보수뿐만이 아니다. 능력주의 시대에서 유능하지 못한 중산층을 향한 경멸을 통해 비로소 이들의 자기 착취행위가 합리화된다. 이러한 양상은 어느 기업의 고위 중역의 말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포춘' 선정 500대 기업의 어느 고위 중역은 회사에서 "가장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은 최고 관리자들로, 이들은 "남들보다 더 많이 일하고 더 열심히 기량을 연마하는 데다 더 많은 교육은 받기" 때문에 일자리를 얻고 유지한다고 말한다.

 

이처럼 능력주의는 엘리트에게는 끝없는 자기착취와 중산층에 대한 분노를, 중산층에게는 자아 실현의 기회를 빼앗고 경제적, 사회적 소외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하지만 더욱 걱정스러운 점은 능력주의는 이전 시대의 귀족처럼 대물림되기 쉽다는 점이다.

 

소득분표표 최상층에 속한 가정에서는 자녀 교육을 위해 천문학적인 지출을 한다. 유년 시절부터 자녀들에게 전문적인 과외교사를 붙여두어 이들이 엘리트 사회로 진입하기 위한 활로를 열어주는 셈이다. 실제로 전 세계 개인 과외교사 시장의 규모가 급속도로 커지고 있으며, 소비 불평등 전체를 놓고 보더라도 교육 지출 불평등처럼 빠른 속도로 증가하는 부분은 없을 정도라고 한다. 대표적인 사례로 한국의 중산층의 사례가 나왔으며, 자녀의 개인 과외 비용이 가계 지출의 12%를 차지할 정도라고 한다. 이렇게까지 엘리트층이 자녀 교육에 혈안이 되어있는 이유는 이러한 투자가 수익을 보장하기 때문이다. 자녀가 엘리트 대학에 입학하는 경우 교육의 투자 수익률이 주식이나 채권 수익률의 2~3배에 맞먹는다고 한다. 하지만 중산층의 경우 이러한 지출을 감당하기 힘든 경우가 대부분이며, 그렇다고 하더라도 엘리트 부모가 자녀에게 제공해줄 수 있는 교육의 질조차 중산층의 자녀가 받는 교육의 질과는 격이 다르다. '엘리트 세습'이 지속되는 이유다.

 

...... 오늘날 전형적인 부유층 가정의 인적 자본 투자 초과분(저소득층뿐만 아니라 중산층 가정의 교육 투자를 초과하는 부분)은 자녀 한 명당 1000만 달러를 전통적인 유산 형태로 상속하는 것과 맞먹는다.

 

능력주의가 사회 구성원 개개인에게 미치는 악영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유지가 되는 이유에 대해서 의심을 품을 수 있다. 능력주의를 기반으로한 사회가 경제성장의 가속화나 생산성의 향상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성공적으로 자리잡을 수 있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여전히 이론의 영역에 남아있기는 하지만, 상위 근로자 집단의 경우 이들의 부재에 대한 대안을 만들지 못하게 하여 자신의 입지를 확고히하고 중간관리자의 입지를 약화시켜 몰아내는 방식을 채택했다. 결과적으로 엘리트 근로자가 생산하는 이익이 오히려 비엘리트 노동자가 발휘해야 할 생산성을 줄일 가능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엘리트 집단에 대한 회의적인 시선을 종식시키기에 이르렀다. 여전히 금융 중개에 드는 비용이 줄어들지 않았다는 점과 중위 가구가 유발하는 경제 리스크 비율이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한다. 결과적으로 능력주의에 따른 불평등의 심화는 개개인과 각 집단 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적으로도 경제성장에 제동을 걸고 생산성을 낮추는 결과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 능력주의의 부담이 커짐에 따라 불평등이 정당하다는 논리와 그런 논리의 중심이 되는 능력이라는 개념은 크나큰 압박을 받는 상황이다. 능력주의는 그 개념이 엉터리로 밝혀지고 나면 더 이상 그 압박을 견뎌낼 수 없을 것이다. 능력주의에 따른 불평등이라는 구조물은 오지만디아스에 나오듯이 모래 위에 세워진 형상처럼 언제든 무너져 내릴 수 있다.

 

난공불락의 능력주의를 해체하기 위해서 대니얼 마코비츠가 제시한 두 가지 방법은 다음과 같다.

 

첫 번째로는 부유층 자녀의 최고급 교육에 집중하는 교육방식을 개선하고 포용성을 가질 것. 최고 명문 학교와 대학에서라도 입시 경쟁이 완화되어야 하며 훈련이 덜 소모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 현실적인 정책으로는 사립학교와 대학이 소득분포의 3분의 2에 해당하는 가정 출신 학생을 절반 이상 입학시키지 않으면 세금 면제 혜택을 받지 못하도록 강제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로는 오늘날처럼 암울한 직업과 폼 나는 직업으로 분리된 일이 경제 생산의 중심에 선 중간 숙련도급 근로자에게 돌려주는 것. 

 

 

책을 읽는 내내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며 어떻게 능력주의 사회를 파괴하고 중산층이 경제를 이끌게 할 수 있을까하며 고민을 많이 했고, 저자가 내린 결론도 궁금했는데 마지막에 제시한 두 가지의 해결책에 대해서는 의문점이 남는다. 능력주의의 허상을 붕괴시키고 중산층 중심의 사회로의 회귀가 필요하다고 했으나, 명문 학교 입학하는 중산층 및 저소득층의 비율을 늘려야한다는 것은 능력주의를 유지하면서 엘리트 층을 확대하는 효과만 불러일으킬 수 있다. 문제의 시발점이 되는 능력주의의 허상 자체를 무너뜨리지 않는다면 명문 학교에 입학한들 엘리트 집안 출신들의 사람들과의 괴리와 역차별만 불러일으키는 '저소득층 할당제'나 다름이 없는 것이다. 능력주의로 말미암은 불평등을 꼬집고자하면 불평등의 정의가 어떤 것인지부터 돌아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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